대문호 헤밍웨이를 따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10달러를 걸고 주어진 단어 6개로 이야기를 만들라는 내기를 내곤 했다니 어떤 스토리들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각각의 낱말이 품은 배경과 사연들이 모여 또 다른 차원의 세상 이야기가 탄생했을 터다. 우리 ‘어쩌면북살롱’ 같은 아마추어 모임에서 글쓰기 연습으로 “딱! 이다” 싶었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주제어를 초성 ‘ㅅㅅ’만 제공하여 떠오르는 단어들을 내놓고 그중에서 낱말 6개도 각자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주문했다. 필연과 우연을 적절히 배치하고 싶었다.

역시나 다양했다. 내 머릿속에 없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초성 시옷 두 개로 이루어진 온갖 말들.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 단어를 자유자재로 경험하고 느끼고 정의하면서 살고 있었다. 물론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무슨 일이었는지도 다 다를 테고. 게다가 다른 말 6개가 엮어낼 화학적 반응도 궁금했다. 내가 선택한 낱말 6개는 이렇다.

‘상사, 소소, 시시, 상상, 센스, 성소’

상사는 직장 상사가 아니고 상사(相思)병을 뜻하는 사랑의 열병이다. 나의 상투적인 연상을 벗어난 반전이 신선했다. 시시하다는 말에서 온 시시가 왠지 끌렸다. 중요하고 진지해야만 관심을 얻을 수 있는데 ‘시시’라니 이 또한 가볍게 뒤엎는 매력이 있었다. 단어 상상은 이 말을 꺼내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여운이 길었다. 그래서 그 에너지를 탐했다. 성소 또한 눈물 나는 사연의 사연이 하나인 듯, 둘인 듯, 한 몸으로 부활했다. 그야말로 화학적 반응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승천하듯 경이로웠다. 이야기가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변신했다. 소소는 내가 떠올린 낱말이다. 요즘 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작은 것들에 방점을 찍으려고 일부러 노력한다. 공들여 관심을 들이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감사할 일이자 다행이고 행운인 것에 행복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오랫동안 당연한 듯, 원래 그렇다는 듯 무례하고 무디게 누려온 태도가 관성처럼 눌어붙어서 도무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편향을 제대로 돌려놓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단어 센스는 심지어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어다. 내가 영어로 밥벌이한 게 20년인데 바로 튀어나오지 않아서 놀라서 골랐다. 센스 좀 챙기자는 의미로.

이제 이 여섯 낱말을 활용해서 나의 이야기를 구성해야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내가 하자고 제안하고도 술술 풀리지 않았다. 각각은 느낌대로 골랐지만 한데 엮는 건 또 다른 차원이었다. 내 발등 내가 찍은 셈?! 제한 시간 10분 이내에 글을 쓰라니 내가 셰에라자드였으면 바로 참수당할 운명이다.

지난주 정기 모임에서 휘리릭 써낸 글이다. (자평: ‘순발력과 창의력이 부족하군.’)

상사병에 걸린 듯 사랑하고 싶었다.

소소한 하루 일과를 보내더라도 홀린 듯 넘어간 사람과 함께라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을 것 같았다. 사랑은 절대 시시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했더랬다. 현재 스코어 뻥이다.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현실 남편은 센스 제로다. 내가 상상한 사랑은 성스럽지도 않았고 소박하지도 않았다. 난 무엇을 상상한 걸까?

세상과 다른 단어로, 마음으로 보고싶다.

조금은 바보스럽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 흘러 가고 싶다.

그러나 내속의 나란 자아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우울하고.. 슬프고..

그래서 오늘도 입을 닫는다.

눈에 보이는것도 보지 않았으면 싶다.

아직도 내 속의 갈등이 있는 걸 보니 젊은가 보다.

오늘을 지금에 만족하며 웃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