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쩌면 뉴스레터 입니다.

우리끼리 소소하게 시작한 뉴스레터가 벌써 3번째 글감을 들고 왔습니다.

그동안 변화가 있다면, 뉴스레터 발행을 기다리시는 독자님들이 한분 두분 생기기 시작했고, 바쁜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습니다. 더 재미있고, 진솔한 이야기로 독자님들께 쉼표가 되는 어쩌면 뉴스레터가 되겠습니다!

이번 글감은 '맛, 봄'으로 준비해보았습니다. 인생의 맛과 바라보는 것들, 그리고 싱그러운 계절 봄을 가지고 이웃작가님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인생의 달콤함도 씁쓸함도, 보고 싶은 그리운 이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독자님은 오늘 하루가 어떤 맛으로 기억되시나요? 무엇을 보고 느끼셨나요?

성인이 되고 20대 초반은 정말 바쁘고 지독하게 살았다. 학기가 열리고 봄이 찾아오면 벚꽃놀이나 데이트는 무슨, 봄날의 꽃구경은 사치였다. 한 번씩 여유가 생길 때면 거리에서 간단히 즐기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항상 꽃이 피던 시기엔 늘 바빴다. 그 시기는 ‘나’라는 사람을 더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시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했었고 장학금도 놓칠 수 없기도 했다. 그래도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학교에서는 캐나다 어학연수와 호주 해외 탐방 프로그램, 체코 교환학생에 그리고 거기서 받은 장학금으로 이집트 여행까지 다녀올 기회를 주었다. 물론 내가 모두 찾아보고 신청해서 나름 뽕(?)을 제대로 뽑았던 것인데 심지어 학교를 1주일에 4일만 다녔으니 바쁘기는 정말 바빴었다.

학교를 나와서는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봄이 없었다. 여전히 꽃은 걸어가면서 혹은 버스를 타면서 보았고, 바빴던 일상은 단조롭게 바뀌었고 이제는 고독함이 밀려왔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꽃구경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어릴 적의 봄날들이었지만, 그때의 꽃들은 나의 눈에 여유를 주고 향기는 깊게 호흡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잠깐 스치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한 번 더 쉬어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바쁜 일들 사이에서 흥얼거리며 여유를 찾게 하고 스스로 힘이 나도록 도와주었던 봄은 나에게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즐겁고 행복한 봄만 있을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꽃기운으로 다 이겨내 볼 것이다!

해상도 좋은 핸드폰을 취급하면서

50이 넘어 나이테가 선명히 드러나는 셀카를 그만두었다.

뽀샵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아니기에.

최고로 분주하고 바쁜 시절 열일곱 살에 만난 ‘인생 책’을 소개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서머셋 모음의 ‘인간의 굴레’가 눈에 들어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단숨에 읽었다. 꽤나 두꺼운 책이 내 인생의 중요한 좌표를 찍어주며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스로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필립을보며 ‘참 가혹하다.’라며 인생을 잘 설계하고 가꿔야겠다고 또한 후회하지 않는 시간으로 살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책은 ‘필립 캐어리’라는 주인공의 성장소설로 힘겨운 유년기와 학창시절(안짱다리)을 지나며 자기만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려는 한 젊은이의 역경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람 때문에 울고 웃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며 감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주는 우리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인생은 양탄자의 무늬 짜기다.’라는 문구에 밑줄을 긋고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많은 굴레는 저주해야 할 삶의 고통이라기보다는 내 삶을 다채롭게 꾸며준 양탄자의 무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아파해본 사람은 양탄자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새길 수 있다고 기도한다. 작은 소망을 가지고 전에도 오늘도 내일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오늘의실수, 아픔, 눈물이 미래의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을 기대한다. 한 치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이 책은 언제나 인생의 나침판이 되어줄 것이다.

너는 내 어릴 적 여행, 그것도 비행기 타는 여행을 꿈꾸게 만든 첫 음식이었다. 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맛은 다양하다는 것을 말이다. 청년들에게도 이 맛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 기회가 오자 냉큼 또 널 소환했다. 청년자립네비게이션 프로그램으로 만난 청년들에게 너를 소개해주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내 오랜 추억 속의 너, 시큼 달콤 상콤한 자연의 맛. 또 먹고 싶다. 

그와 화해하고 싶어서 내가 꺼낸 무기도 바로 너였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될 것 같고 내 감정의 다스림 없이 또 툭툭 뱉어낼까 두려워서 소심하게 그러나 크게 용기 내어 뻗어 본 손길 끝에 그를 위해 마련했던 음식이었다.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감정이 올라온다. 그때 마음이 생생하다. 유리병에 담긴 국물까지 홀홀 마셔버리던 모습으로 많은 감정이 쓸어내려졌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너

“H랑 놀지 마!”

세상에 너무 빨리 등장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도 곧잘 불러서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요즘 말로는 ‘핵인싸’. 지금 태어났으면 유튜브 채널 운영하면서 영앤리치로 살았을텐데. 애석하게도 뉴스에서 5공화국 6공화국 하던 시절에 태어나서 학교를 다녔다. 선생님들 눈에는 하고 다니는 꼴이 딱 ‘날라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격리해야 하는 ‘문제아’로 보였을 것 같다. 문제아 H가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화려한 과거다.

차라리 본인을 불러서 혼을 내셨다면 덜 속상했을 텐데, 친구들에게 왕따를 사주(?)했던 선생님이라니. 사춘기 열병을 앓고 있던 소녀에게는 얼마나 상처였을까 짐작도 안 간다. 가슴에 콕 박힌 그 말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반항 대신에 공부를 선택했다. 저 아픈 말이 연료가 되어서 공부를 지독하게 해봤다고 했다. 목표는 하나.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나의 제자면 모두 사랑해

주는 선생님이 되겠다. 이 얼마나 숭고한 다짐인가. 소녀의 작심은 삼일을 넘겼다. 품은 게 한이 아니고 꿈이라서 오뉴월에 서리는 안내렸지만, 꽤 괜찮은 대학교 국어교육과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것도 재수 없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울기도 많이 했는데 눈물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남들보다 빠르게 대학교 3학년 때 임용고시를 패스했다. 이건 재수가 좋았다고 했다.

선생님의 학창시절은 교편을 잡고 나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노래방에 출석하던 실력으로 수학여행에서는 소찬휘의 티얼스를 열창하기도 하셨는데, 모범생 출신 선생님들이‘개똥벌레’나 ‘만남’을 부르는 것과 사뭇 다른 선곡과 무대 매너를 선보이셨다.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학원을 다닌 적이 없지만, 수능에서 국어를 딱 2문제 틀렸다. 이건 모두 김혜영 선생님 덕분이다. 우리 반은 주기적으로 자리를 바꿨는데, 내가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선생님 교과서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교과서가 너덜너덜했는데, 메모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 연기도 하고, 랩도 하셨다. 그렇게 한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선생님은 열심히 또 잘 가르쳐주셨다.

그 선생님이 나의 고3 담임선생님이 되었으면 했는데,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을 막 졸업한 손이 빠른 막내 교사는 행정업무가 차고 넘치는 자리로 갔다. 담임이 아니라서 야자 감독은 안 했는데, 거의 매일 우리와 같이 퇴근하셨다. 0교시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은 7시에 출근해서 매일 밤 9시에 퇴근하는 지옥같은 회사에 다녔던 것이다. 선생님과 교문까지 같이 걷는 날이면 고3 담임선생님 흉을 보곤 했다. 선생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고3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면 진한 담배 연기가 떠오른다. 나쁜 선생님은 아니셨는데, 학급 서기라서 매일 같이 선생님의 사인을 받는 나의 이름을 2학기 때까지도 종종 잘못 부르셨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대화를 처음 하게 된 것은 진학상담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진학상담은 효율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나의 꿈이랄지 내가 되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으셨다. 나의 6월, 9월 모의고사 성적표와 전지 크기의 대학별 수능 컷트라인을 보내주시면서 나의 위치를 알려주시고 보내셨다. 나의 성적표를 보고 비난하지 않으셨지만, 격려도 없으셨다.

못마땅한 선배 교사에게 아끼던 첫 제자들을 보내며, 같이 흉봐줄 수는 없었을 선생님. 어느 날 선생님의 작은 승용차에 우리는 몸을 꾸겨 넣었다. 제자들을 데리고 밤 드라이브를 시켜주며 월미도에서 디스코팡팡을 태워주던 선생님. 친구 같고, 누나 같았던 선생님.

요즘 교권 추락 뉴스를 볼 때면 우리 선생님이 생각난다. 매년 자기 반 학생들로 카카오톡 프로필을 채우는 선생님. 아직도 제자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주고 계시는 것 같다. 졸업하고 찾아뵈었을 때 방방 뛰면서 교문으로 뛰어오던 여전히 소녀 같은 우리 선생님.

선생님 보고 싶어요!